Page 82 - 퇴옹학보 제17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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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 『퇴옹학보』 제17집




            불교의 복잡한 교리들은 한 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차

            례로 발전했으며 간단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발전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1900년대 초반 무라카미 센조(村上專精)가 정식

            으로 대승비불설이란 이름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 논의는 본격화된

            다. 당시 일본의 불교학계는 서구의 문헌학적 분석을 바탕으로 부파불
            교에 선행하는 근본불교를 찾기 위해 노력했으며 붓다의 깨달음의 본질

            또는 가르침의 본성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했다.
               우이 하쿠주(宇井伯壽)는 이러한 근대 일본학계의 경향을 대표하는 학

            자로 독일과 영국으로 유학했고 일본의 도호쿠대학, 도쿄대학, 고마자

            와대학에서 강의하며 인도철학 인도불교 중국불교 등에 있어서 많은 업
            적을 남겼다. 당시 근본불교에 대한 일본 불교학계의 추구는 4성제 8정

            도 12연기 등과 같은 불교의 근본을 이루는 교리에 대한 검토를 통해
            붓다의 깨달음이 과연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논의들로 이어졌고, 우이

            하쿠주(宇井伯壽)는 시리즈로 나온 ‘인도철학연구’라는 저서를 통해 이러

            한 논의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그는 4성제와 12연기에 주목하면서 12
            연기 보다는 연기공식을 선호했고 공시적이고 논리적인 상호의존성이

            붓다의 깨달음의 본질이 아니었을까 하는 견해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

            다. 물론 그의 이러한 논의는 마츠모토 시로(松本史朗) 등과 같은 후대
            학자들의 호된 비판을 받았지만, 부파불교 중심의 유럽 불교학계와 구

            분되는 일본의 불교학을 세우기 위한 노력으로 볼 수 있다.

               퇴옹성철은 1900년대 초중반 일본의 불교학계가 가지고 있었던 이
            러한 문제의식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일본뿐만 아니라 유럽 불교학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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