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0 - 퇴옹학보 제18집
P. 100

100 • 『퇴옹학보』 제18집




            의미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공안을 참구하는 것은 極甚難解                     119) 하고,

            구경각의 무심은 고금을 통하여 지극히 어려운 일                 120) 이라고 한다. 이렇
            게 어렵지만, 이렇게 어렵기 때문에, 知解와 같이 언어분별에 의한 이해

            를 통해서가 아니라 실체 체험을 통한 깨달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깨달음의 門은 불교의 생명으로 참구는 깨침이 표준                      121) 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8만대장경을 익혀도 불성을 실제 깨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고, 경론을 익히는 것은 수행에 오히려 장애                  122) 가 되므로, 결

            국 성철의 핵심은 깨달음에 의한 수행과 실천이라 할 것이다.
               한편, 중도의 목표인 해탈은 승조와 마찬가지로 열반과 생사를 구분

            하지 않으면서도, ‘생사=열반’을 해탈 이후로 제시한다. ”완전히 해탈하
            고 보니 유와 무가 서로 통하고, 선과 악이 서로 통하고, 중생과 부처가

            통하고, 마구니와 부처가 서로 통“           123) 한다는 것이다. 이 측면에서 해탈

            이 되지 않은 세속은 상대적 모순의 세계로 보고 부정하며, 이를 초월
            한 절대적 세계를 중도의 구현으로 본다. 그러므로 불교의 궁극적인 목

            표에 대해 “상대적이고 유한한 생멸 세계를 떠나 절대적이고 무한한 해
            탈 세계로 들어가 영원한 행복”          124) 을 얻는 것으로 제시한다. 이는 우리

            현실세계는 상대로 이루어져 모순과 투쟁으로 불행에 떨어지므로 상대





            119) 성철(1993a), 3.
            120) 성철(1993a), 277.
            121) 성철(1993a), 279-280.
            122) 성철(1993a), 215-6.
            123) 성철(2014a), 174.
            124) 성철(1992), 15.
   95   96   97   98   99   100   101   102   103   104   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