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5 - 퇴옹학보 제18집
P. 95
僧肇와 性徹의 中道사상 비교 • 95
이지만 그윽한 관조에는 낮음과 깊음이 있다. ... 이는 내가 무위와 다른
92)
것이 아니라 무위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삼승이 있을 뿐” 이라고 하
며 열반은 동일한 목표지점이지만 여기에 도달하는 수양의 차이와 공
부 방법의 다름을 말한다. 이는 승조 당시와 그 이전 점수설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竺道生(? ~ 434)과 승조가 『注維摩詰經』의 주를 달 때(406년)
93)
승조가 도생의 돈오를 반대 하고 점수의 수행론을 제시한 것임을 말한
94)
다. 그러므로 승조가 불교이론 연구에 치우치고 실천 문제에 소홀 하
95)
여 열반을 어떻게 깨달을지의 문제는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는 평
가도 받지만, 중도인 반야를 성불의 원인으로 제시하며 수행의 필요성
96)
을 각인시킴으로써 수행론 정립에 기여 한 역할도 있다고 할 것이다.
이는 돈오의 철저한 수행의 강조와 함께 이를 위한 구체적인 여러 수행
법을 제시한 성철과 비교하면 훨씬 덜 체계화된 것이지만, 승조는 당시
般若空觀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것이 안타까워 무엇보다 그 올바른 이
해에 치중한 것이다. 그리고 만약 승조가 더 오래 살아 구체적 수행론을
체계화하고자 했다면, 그 역시 성철과 유사한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까?
92) 「涅槃無名論」(T45, 1858), “三鳥出綱, 同適無患之域, 無患雖同而鳥鳥各異. ... 無爲雖一,
而幽鑒有淺深. ... 此非我而異無爲, 以未盡無爲, 故有三耳.”
93) 許抗生(1998), 417.
94) 승조는 중관사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상즉을 강조하여, 그러한 원리로 진제와 속제의
차별성을 이론적으로 극복하는 데 그친 반면, 도생은 상즉보다 진제를 강조하여 실천 수
행을 통한 이제의 합일을 추구했다. (하유진(2008), 133.)
95) 승조의 핵심 문제는 열반의 증득 문제가 아니라, 명칭화 가능 여부이다. (李潤生(1989),
215.)
96) 이현옥(2005), 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