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5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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僧肇와 性徹의 中道사상 비교 • 105





               교단이 형성되어      137)  있다거나, 「열반무명론」 저술에 대해 국왕이 칭찬

               을 하며 그 저작을 복사하여 요흥의 가족들에게 배포하라는 명을 내린
               다 138) 든가 하는 것 등 승조가 당시 현실 상황과 아주 잘 호응함을 말해

               주는 자료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상황이기에 승조는 그를 비판하려는

               의도로 편지를 보낸 류유민(? ~ 410)       139) 에게까지 “진왕(요흥)은 불법의 도
               를 천성적으로 타고나서 천성이 일반사람들을 뛰어넘습니다. 불법승 삼

               보를 철통같이 지키고 도를 넓히는데 힘쓰니 다른 나라의 뛰어난 승려

               들이 먼 곳에서도 찾아옵니다.”          140) 라고 한다. 이는 단순히 예의상의 표
               현이라기보다는 왕의 천성까지 신뢰하며 당시 현실을 잘 수용하는 진심

               으로 보인다.
                 이러한 대응은 용수와도 거의 유사하게 살펴볼 수 있다. 용수는 『寶

               行王正論』 등을 통해 현실세계에서 지향하는 이상국가의 이념을 제시

               하는데, 이는 적극적인 입장에서 현실문제를 개선하고 사회의 제반 문
               제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이상적 정치이념과 제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때문에 그는 왕의 호위병으로 지원하여 장군 직위







                   으면서 구마라집 법사와 함께 대승교리를 살폈다. (「般若無知論」(T45, 1858), “時乃集
                   義學沙門五百餘人於逍遙觀, 躬執秦文, 與什公參政方等.”)
               137) 洪修平釋譯(1996), 9.
               138) Liebenthal(1968), 7.
               139)  『조론』의 한 부분인 「劉君致書覈問」(「劉遺民書問附」)은 실체적 法性 개념을 중시하는
                   혜원의 제자인 류유민이 승조와 생각이 달라 여러 의문을 보낸 편지이다.
               140)  「般若無知論」(「劉君致書覈問」)(T45, 1858), “秦王道性自然, 天機邁俗. 城塹三寶, 弘道是
                   務. 由使異典勝僧方遠而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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