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3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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僧肇와 性徹의 中道사상 비교 • 103
해 왜 그들이 이러한 차이를 야기했는지의 그 배경 및 이유를 살펴보고
자 한다.
1. 개인 및 사회 정치적 배경; 현실 상황에 대한 대응
이는 승조와 성철의 개인 성향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 때문에 당
시 사회정치적 현실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어떻게 다르게 했는지에 대
한 논의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점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한 탐색이다.
승조의 생존 기간은 100여 년에 걸친 대전란의 북방 16국 시기 중 모
처럼 평화를 찾아 불교를 크게 흥성시킨 後秦 시대(384-417)이다. 132) 당
시 불교는 北朝에서의 이민족들끼리의 정권 다툼과 전쟁의 상황 속에
발전한다. 즉 불교는 이민족 왕들의 통치 과정에서 권력 양보를 의미하
는 중국 사상 수용보다 중국 외부에서 들어왔다는 측면에서 매력적 대
안일 뿐만 아니라, 그 윤리가 보편적이어서 이민족 정부가 앓던 처참한
살육의 회한을 무마하고 사회 균열을 치료하는 역할을 한다. 한편 불교
입장에서는 전제 군주의 지지와 보호가 확실한 이점으로, 이에 불교는
사회 전체에 확산할 이례적 기회를 얻어 4세기 중엽 이후 불교의 파격
적 팽창은 모든 계층에서 추적 가능할 정도이다. 이 때 대부분 외국인
인 승려들은 전적으로 군주가 베푸는 총애에 의존하는데, 특히 승조의
스승인 구마라집(344-413)은 당시 국왕 요흥(재위 394-416)의 요청과 도
132) 許抗生(1998),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