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4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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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 『퇴옹학보』 제18집




            움으로 수도(장안)에 401년 도착하여          133)  인도불교를 중국에 도입하는데

            중심이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승조의 현실에 대한 대응은 出世와 入世를 분리하

            지 않고 이상사회가 현실 가운데 있음을 제시해주는 『維摩經』                     134) 을 읽

            고 출가한 데서도 잘 나타나지만, 그의 최후 저작인 「열반무명론」 서두
            에 당시 국왕에게 올리는 편지에서 극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엎드려 생

            각하기에 폐하께서는 매우 지혜롭고 밝으셔서 정신이 도와 하나가 되어

            空의 이치에 오묘하게 합치하셨으니 통하지 않는 이치가 없습니다. 그러
            므로 폐하께서는 온갖 일들에 자유자재로 움직이면서 하루종일 도를

            넓히십니다. ... 그러므로 세상에 네 가지 위대한 것이 있는데 왕도 그 하
            나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135) 라고 하며 국왕의 모든 것을 떠받들고 인정

            하며 당시 현실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국왕과 호흡을 잘 맞추는 모습

            을 보여준다. 이는 그의 사상적 기본 입장만이 아니라 당시의 현실이 야
            기한 것이기도 하다. 즉 승조는 구마라집과 함께 당시 국왕의 적극적인

            후원을 입으며 자신의 사상을 마음껏 전개할 수 있는 평화의 시기에 속
            하므로 이러한 칭송을 하는 것이기도 하고, 세속과 이상을 구분하지 않

            는 기본 입장에서 당시 현실을 잘 수용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국왕

            (요흥) 자신이 직접 강의를 듣는다         136) 거나, 구마라집을 중심으로 거대한




            133) 아서 라이트, 최효선 역(1994), 79-80.
            134) 洪修平釋譯(1996), 5쪽.
            135)  「涅槃無名論」(T45, 1858), “伏惟陛下叡哲欽明, 道與神會, 妙契環中, 理無不統, 游刃萬
                機, 弘道終日. ... 所以域中有四大, 而王居一焉.”
            136)  당시 그는 소요관에서 불교 교리를 공부하는 승려 5백여 명을 모아 놓고 몸소 한문을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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