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6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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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올라 왕을 비롯한 궁전의 바라문들도 불교에 귀의하게 한다. 여기
서 그의 중관 사상이 1-2세기에 널리 전파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즉 원
래 外道 바라문인 그가 불교의 감화를 받아 전향한 이후 남인도의 어느
국가에서 군인으로 복무할 때, 대중의 관심을 끌 뿐 아니라 정치를 잘
이용하여 그 충정이 국왕의 눈에 들게 되고 국왕의 스승까지 되는 과정
에서 국왕이 그에게 감화를 받고 중관파를 전폭 지지한 142) 것이다. 이는
이상만을 최고로 두고 한 가지에 치우치지 않는, 즉 당시 사회현실도 적
극적으로 수용하고 거기에 참여하는 空의 실천일 것이다.
한편 성철의 경우는 일단 승조와 달라 보인다. 성철은 일생 내내 대체
로 철저한 수행과 현실에 (의도적으로) 관여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여준
다. 그의 8년간의 장좌불와, 16년간 생식으로의 일관, 40여 년간 소금
기 없는 음식으로 광목과 마포 이외의 옷은 입지 않은 것 143) 등 철저하
고도 구체적인 계율의 제시와 수행 생활은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질
정도이다. 그리고 그는 속세와 철저하게 거리를 두면서 이러한 수행을
실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러한 출세적 경향은 일반 학교에 다니지 않고 학문도 대부분 독학
으로 이룬 데서 어릴 때부터 그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이러한 성향으
로 그는 당시 불교 문제를 해결하고자 봉암사 결사 등을 이끌면서도 정
화불사에 참여하자는 제안에 전혀 간여하지 않는다. 144) 이는 봉암결사
141) 이현옥(1998), 254-6.
142) 양훼이난, 원필성 역(2010), 176.
143) 성철(1993b), 198.
144) 원택엮음(2012), 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