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7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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僧肇와 性徹의 中道사상 비교 • 107
에서부터 절대 산을 떠나지 않고 모임에 참가자지 않겠다며 스스로 약
145)
속 할 정도로 강한 그의 출세간적 성향을 나타낸다. 이러한 입장에서
그는 왕과 적극 협력하는 승조의 태도와 달리 당시 정치와도 관계를 맺
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신헌법, 20.26 등 한국사회의 정치적 혹한기에
사회현실에 적극 관여한 다른 종교인들에 비해 성철은 당시 상황에 대
해 침묵한다. 146) 또한 종교가 정치에 지배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믿음으
로 당시 전두환 정권의 국정자문회의에 참가해 달라는 거듭된 초청에도
응하지 않는다. 147)
그런데 그가 이렇게 속세와 단절하다시피 한 것은 단절 그 자체를 위
해서가 아니라 당시 현실에 대한 그 나름의 방안 모색 차원이기도 하다.
즉 조선의 오래된 억불정책으로 인한 불교의 피폐, 해방 이후 팽창하는
서양종교에 대한 위기감, 일본불교 영향 아래의 대처승 문제에 대한 한
국불교의 정통성 회복의 필요성, 출가정신과 승가상의 부재 등 당시 혼
란기에 빠진 불교를 개혁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 148) 으로 그의 강한 출
세간적 태도와 철저한 수행정신이 강화된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불교
상황에 대한 진단과 대안으로서 그만큼 엄격한 수행을 통해서도 제자
149)
리를 찾기 힘들다는 인식과 내면적 고뇌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속세 일에 간여하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그 현실을 그가 생
145) 박진영(2006), 43.
146) 김성철(2011), 157.
147) 김종인(2006), 328-331.
148) 서재영(2017), 8-20.
149) 김방룡(2005), 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