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0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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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 『퇴옹학보』 제18집
승경전의 독송자는 독송을 통해 서사경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붓다의
말을 듣는 것이며, 그것을 통해 서사텍스트인 대승경전이 이끄는 붓다
의 세계로 취입해 들어가는 것이다. 선종에서는 이 서사텍스트로서 대
승경전이 수행하는 역할을 조사가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경전을 해석
하고 이론적으로 체계화해가는 지점에 교학과 교판이 있었다면, ‘읽는
다’고 하는 단순한 행위를 조사에 의해 대체함으로써 대승경전이 추구
했던 ‘직입’의 의도를 선종은 달성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곧 선종은 대승경전의 사상체계를 대체해갔던 것이 아니라 대승경전
그 자체를 대체해갔다고 볼 수 있다. 교종의 교판/종판은 소의경전이 지
향하는 목표 지점을 교학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드러내고 설명하는
목적을 지닌다. 이 과정에서 경전의 사상을 교리적으로 분석하는 경향
이 강해지며, 이것은 오히려 ‘경전이 지향하는 붓다를 경전을 매개로 하
여 출현시킨다’고 하는 대승경전 본래의 의도를 약화시키는 결과도 초
래하게 된다. 선종은 그리고 조사는 이 대승경전의 본래적 의도를 간파
한 결과물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9)
터 아미타불이 출현하는 것, 『아미타경』에서 6방 세계에 제불이 출현하는 것, 그 서방세계
에 더욱이 아미타불이 출현하는 것, 이들 다른 모든 붓다들이 이구동성으로 전승의 정통
성을 증언하는 것, 이들의 언설 모두가 경전에 포함되고, 이 경전의 전승이야말로 전통의
정통성 수립에 다름 아니라고 간주되고 있는 것, 이러한 일련의 사건에 이윽고 하나의 전
망이 부여되기 시작한다”라고 말한다.(시모다 마사히로, 2017, 「정토사상의 이해를 향해
서」, 원영상 역, 『붓다와 정토-대승불전Ⅱ』, 씨아이알, p.56.)
9) 물론 이 같은 관점에서 교종의 종파와 선종을 대비시켜 해석하는 것은 교종과 선종의 다
양한 종파들이 가지는 사상적 특징을 세세하게 헤아려 구분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음이 분
명하다. 다만 논자의 지적이 사상적 측면 그 자체가 아니라 대승경전 혹은 조사가 불교전
통의 전승에서 보여주는 방법론적 측면의 동일성을 지적하려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