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2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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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 『퇴옹학보』 제18집
한다. 첫째는 천태사상과의 대비라는 측면인데, 흔히 말하는 성구(性具)
와 성기(性起)의 대비라는 측면에서이다. 둘째는 지론사상 및 삼계교 사
상으로부터의 탈피와 관련된 사상적 문제이다. 셋째는 화엄교판이 체계
화되던 시기에 강력하게 대두되었던 법상종과의 차별화 문제이다.
첫째, 성구(性具)와 성기(性起)의 문제이다.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수·당 시기의 불교는 일체개성(一切皆成)을 주장하는 ‘일체중생실유불성
(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는 『열반경』과 여래장계 경론의 설을 어떻게 수용
하고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천태종이
주창하는 성구설(性具說)과 화엄종이 주창하는 성기설(性起說) 역시 예외
는 아니다.
성구설은 성악설(性惡說)이라고도 불리는데, 부처에게도 성품으로의
악[性惡]이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성구설의 기반이 되는 일념삼천설(一念
三千說)은 찰나의 일념에 지옥중생부터 부처에 이르기까지 삼천의 다양
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설한다. 언제든지 부처가 될 수도 혹은 지
옥에 떨어질 수도 있다. 누구든지 언제든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궁극적 평등을 지향하는 적극적 사상이지만, 동시에 현실에서의 차별
성을 수긍하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수동적 사상태이기도 하다. 현실에
대한 수긍과 현실에 대한 극복이 동시에 요구된다는 점에서 지극히 현
실 수용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화엄학은 성기(性起)를 말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현실태의 세계
이다. 언급하는 세 가지 문제는 모두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고 하는
일체개성(一切皆成)의 설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