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4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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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 『퇴옹학보』 제18집
기를 모두 염문연기(染門緣起)로 설하고 있는 것이다. 혜원에 있어서 진심
작(眞心作)의 입장은 정연기(淨緣起)의 면이 강함에 반해, 지엄은 가능성
으로서의 정연기의 면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진심(眞心)과 염법(染法)을
대치하여 염법(染法)이 진심(眞心)에 의한 허망한 것임을 제시하는 목적
으로 염문(染門)에서 논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것은 “여래장연
기를 이어받으면서도 여래장적인 테두리를 벗어나”는 과정이라고 지적
13)
한다. 이 지적은 화엄교학과 지론학의 차별화 지점이 본래성의 당위적
인 측면을 부각하고 강조하는데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읽을 수 있
다. 역시 앞서 언급한 성기(性起) 곧 여래출현(如來出現)을 강조하는 부분
이다.
다음 삼계교와 화엄교학의 차별화 지점에 대해서이다. 삼계교의 행
법에 있어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강렬한 말법의식과 보경인악설(普敬認
惡說)을 들 수 있다. 화엄종에 말법의식이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반면 보경인악설은 화엄종 특히 지엄
에 의해서 그 전문이 인용될 정도로 중요하게 취급된 논의이다. 이 설의
요점은 일체는 다 불성을 가진 존재 곧 부처와 다르지 않음으로 모두 예
경의 대상이며[普敬], 반면 자신의 악은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말법
시대의 하근기 중생을 현실로 인식하는 데서 비롯된 설이다. 하지만 화
엄종에서는 이를 보현행의 실천 사례로서 수용할 뿐이다. 보리심의 현
전에 대한 당위와 자각을 지향하는 화엄종의 입장에서 보면 적절하지
13) 전해주(1992), p.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