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1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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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옹성철의 중도법문이 한국불교에 미친 영향 • 181
구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허구가 사람들을 속박하는 인식의 감옥이 되
고, 고통을 주는 원천이 된다. 따라서 양변에 입각한 담론은 번뇌를 촉
발하는 무수한 희론(戱論)을 양산해 낸다. 희론에 빠져 싸우는 것은 마
치 밤길을 가다가 만난 새끼줄을 뱀으로 오인하는 것과 같다. 실체하지
도 않는 허구에 매달려 집착을 강화하고 번뇌의 수렁으로 빠져들기 때
문이다. 퇴옹은 그와 같은 희론을 넘어서기 위해서 양변이라는 인식이
초래한 허구를 버려야 한다고 일깨운다.
“ 참다운 평화와 자유를 얻으려면 양변을 버려야 합니다. 양극을 버
리면 양쪽이 서로 비춥니다[雙照二諦]. 물과 불이 서로 통하고 시와
비가 통하며, 이런 모든 것이 서로 다 통하게 됩니다. … 서로 비추
는 중도 세계는 서로 통하는 세계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둘이 아
닌 법문[不二法門]’이라 하니, 선과 악이 둘이 아니고 시와 비가 둘
이 아니고 전부 둘이 아닙니다. 불교의 근본에서는 서로 통합니다.
서로 통하려면 반드시 양변을 버려야 합니다.” 22)
참다운 평화와 자유를 얻으려면 양변을 버려야 한다. 양변은 ‘나’라
는 실체화된 자의식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인식이 만들어낸
허구일 뿐 실체가 없다. 그런 허구적 인식이 나와 너를 구분 짓고, 무수
한 경계를 만들고, 나와 세계를 고립시킨다. 하지만 양변을 버리면 그런
경계는 해체되고 너와 내가 둘이 아닌 불이(不二)의 세계가 드러난다. 서
22) 성철(2014), 97(상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