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2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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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2 • 『퇴옹학보』 제18집
여 중국에 건너와서 발전된 止觀修行, 그리고 송대에 확립된 看話禪과
默照禪의 출현 등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서 간화선은 동아시아의 한자
문화권에서 선종의 수행방식으로서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5)
이와 같은 방법에 의하여 추구되는 깨침의 성격이란 깨침 자체가 무
엇이냐에 대한 구명이 아니다. 오히려 수행을 통한 결과로서 도달된 상
6)
태에서 깨침을 어떻게 규정짓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깨침의 성
격상 무엇이라 언급하는 것을 꺼려온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나 그렇게 言詮不及의 대상으로 묻어 두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여타
의 종교에서는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논의를 부정하고 있지만 불교에서
는 佛身 자체까지도 문제로 삼아 논하는 것이 그 특징 가운데 하나이기
7)
때문이다. 이와 같이 어떤 매개체를 통하여 그것을 언설로 드러내는 것
5) 그 발생은 온전히 중국적인 사유구조에서 등장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곧 인도에서의
선정수행은 제법의 생멸과 연기의 구조를 통한 직관에서 단계적으로 번뇌를 멸하고 지혜
를 개발하는 방식을 취해 왔다. 그래서 선정의 삼매에 있어서도 마음속에서 나타나는 변
화에 따른 단계를 설정하여 많은 禪理의 천착이 있었다. 이와는 달리 중국에서 전개된 전
종의 경우에는 깨달음에 단계성을 인정하면서도 마음을 밝혀 곧장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
간다는 돈오의 입장도 아울러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깨달음의 구조를 논하기보다는 우
선 깨달음의 성격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 사실이다.
6) 왜냐하면 깨달음의 경지란 自內證의 경지로 간주하여 감히 이러쿵저러쿵 언급하는 것을
회피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마치 벙어리가 꿈을 꾸었으나 꿈속에서 본 것을 표현하지
못한 것과 같다. 꿈을 꾸었으면 언설로 표현이 가능해야 한다. 그래서 이 깨달음에 대하여
비유나 상징을 통하여 어떤 측면으로든지 논증이 없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
달음 자체에 대한 논증을 회피해 온 것은 깨달음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言說不及이라는
특징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논하는 것은 곧 그 경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능하다
는 縣崖想 때문이기도 하다.
7)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든지 깨달음 자체에 대한 논증은 전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중국의 선종에서는 그 깨달음에 대하여 좌선을 통한 마음의 발견 내지 사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