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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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 『퇴옹학보』 제18집




            지해적 차원의 이해와 체험을 깨달음으로 자처하는 병폐가 나타날 수

            도 있다.
               성철스님은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마조스님이 설한 깨달음과 여래

            의 깨달음이 완전히 같은 것임을 논증하고자 한다. 망상이 멸진하는 일

            과 무생(無生)을 철증하는 일은 동일한 일로서, 이를 여래청정선이라 한
            다는 것이다. 위 인용문은 이러한 설법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설법일 수

            있다. 마조스님 스스로 자신의 선이 여래선임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중 밑줄 친 부분과 같이 좌(坐)→생(生)의 대체가 발견된다.
                                                                     16)
            이 글자는 형태상의 유사성으로 인해 집필시 잘못 필사된 것일 수 도
            있다. 그런데 성철스님은 이렇게 변형된 텍스트에 기초하여 설법을 전개
            한다. 결과적으로 ‘수행할 일도 없고, 좌선할 일도 없는 것〔不修不坐〕이

            여래의 청정선’이라는 문장이 ‘수치(修治)하지도 않고 생기(生起)하지도
                                           17)
            않으니〔不修不生〕 즉시 여래의 청정선’ 이라는 의미로 바뀌게 된다. 생기
            하지 않는다〔不生〕는 것은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성철스님

            은 이를 통해 닦을 일이 없다〔不修〕는 말의 뜻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즉
            닦을 일이 없는 것〔不修〕은 망상이 일어나지 않기〔不生〕 때문인 것이다.

            바꿔 말해 불생(不生)이 아니면 불수(不修)를 말해서는 안 되고, 불수(不

            修)가 아니라면 불생(不生)이 아니므로 진짜 무생법인이 아닌 것이다.




            16)  동일한 문장이 『백일법문』에도 인용되었는데, 不修不坐의 원문이 그대로 인용되어 있다.
               따라서 우연한 오기에 가깝다고도 볼 수 있다. 성철스님에게 不修不坐는 수행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이미 구경각을 성취했으므로 다시 닦을 일이 없다는 말로
               해석한다. 퇴옹성철(2014), 『백일법문』, 장경각〔이하 퇴옹성철(2014)〕, 195-197 참조.
            17) 퇴옹성철(2015),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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