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6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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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 • 『퇴옹학보』 제18집
제3장 기독교의 개교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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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앞선 천정(天正) 연간 즉, 선조 때 교토 오산(京都五山)의 승려
가 외교문서 취급 및 번역 등에 종사하기 위해 도항하여 부산을 중심으
로 동래, 울산, 웅천 방면에 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직접 승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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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僧行) 에는 종사하지 않았다. 또한 포교 전도를 목적으로 오산 승려 외
에 도항하여 사원을 건립한 후에 설파하려 한 奧村淨信과 같은 자도 있
었지만, 퇴폐의 극치에 이른 조선불교에는 어떠한 자극(刺戟)도 주지 못
한 것 같았다.
반면, 그 교권(敎勸)을 조선 전 지역에 널리 전파하여 첫 번째로 개교
에 착수한 것은 프랑스 천주교이다. 첫 개교에 착수한 것은 정종 15년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전의 일이다. 그 후 수많은 박해와 희생에도 굴
하지 않고 교선 확장에 심혈을 기울였고 대원군 집정기에는 이미 프랑
스 선교사 10여 명, 신도 10만에 달하여 조선 팔도 교권 대부분을 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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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가 독점하면서 성황을 이루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사갈(蛇蝎) 관계처
럼 서양오랑캐(洋夷)를 아주 미워하는 대원군은 천주교 박해를 기획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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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등 이에 단호히 맞섰다. 그리하여 고종 3년 매우 무자비한 방법으
로 경성에 있는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을 체포하여 무참히 죽이고
신도 수만 명을 학살하였다. 게다가 천주교는 이 박해에도 굴하지 않고
더욱 신예(新銳) 선교사를 증파하고 본국 보호정책에 발맞추어 교권 확
29) 일본 덴쇼 1573~1592년의 연호.
30) 승려 업무, 뒤에 나오는 포교 전도.
31) 뱀과 전갈, 사람이 아주 싫어하는 것의 비유.
32) 이 책에서는 이태왕이라 언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