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1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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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개교50년지(朝鮮開敎五十年誌)』 번역 • 291




                    센슈(泉州) 도기무라(陶器村)에 살았다. 淨信이 원하는 바는 종파가
                    널리 일본 내에서는 번영하고 있는데 중국에서는 왕성하지 않아

                    소승이 중국에 불도를 널리 알리고 싶다는 소원을 청하니, 교여상
                    인이 기특하게 생각하셔서 1585년 중국으로 가게 되는 큰 뜻을 이
                                                                43)
                    루게 되었다. 이어서 500대의 어본존과 십자명호(十字名號)  법어(法
                    語) 한 첩을 받아들고 같은 해 조선 부산해에 들어가 공봉(供奉)하고
                    한 채의 집을 세워 법의(法義)를 널리 알렸다. 그러니 날마다 번성하

                    여 [찾아오는 이] 수만 명에 이르고 교여상인의 말씀(御書)에 감사하고
                    기뻐하더라. 1598년 3년 정월,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淨信이 귀국
                    했더니 교여상인 무척 기쁘게 생각하시어 길이 한 자 다섯 치 목상

                    한 채를 가스가가 만든(春日作) 조수성인(祖師聖人) 어진영(御眞影) 한
                                    44)                              45)
                    폭 예반삼유(禮盤三牖)  어진필(御眞筆)과 함께 직접 하사하였다.


                 옛 기록에 따르면 일본 쪽 조선 체재자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1590년

               4월 일제히 조선을 철수하였다. 당시 조선 측 기록에도 이 갑작스러운
               철수를 놓고 상당히 놀랍고 기이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고덕사 奧村

               師가문의 淨信은 히데요시를 섬겼고 임진왜란 때는 종군을 하였다고 전
               하고 있다. 추측하건대 淨信도 이때 함께 부산을 떠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연기(緣起)에 따르면 1585년부터 1598년까지 淨信은 조선에 체




               43)  십자명호란 ‘歸命盡十方無碍光如來(귀명진십방무애광여래)’의 열 글자로 뜻은 ‘南無阿彌
                  陀佛’과 동일.
               44)  여기에서 예반은 본존 앞의 높은 단. 법회 때에, 도사(導師)가 올라가 부처에게 삼례로써
                  예하고 독경이나 경백 따위를 행한다. 앞에는 경상(經床)이 있고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경쇠와 향로가 있다.
               45)  이 번역문은 필자의 역량부족으로 우츠노미야 메구미(宇都宮めぐみ)선생님의 도움을 받
                  아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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