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7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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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개교50년지(朝鮮開敎五十年誌)』 번역 • 287




               장에 노력한 결과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조선 전 지역에 걸쳐 우뚝하게

               전당을 세웠고, 그 신도 수가 족히 십만이 될 정도였다.
                 다음으로 조선의 교권을 장악한 것은 프로테스탄트이다. 프로테스탄

               트의 조선 개교는 천주교처럼 오랜 역사를 가진 것은 아니다. 또 그 희

               생도 크지 않다. 따라서 교선도 또한 천주교처럼 확산되지 않았다. 그러
               나 거액의 개교자금과 많은 선교사를 파견하고 부지런히 신의 복음을

               전하여 그 세력을 뿌리내렸다. 오늘날에는 조선 전 지역 중미국(中米國)

               계의 장로회가 가장 많은 신도를 확보하게 되었다.



               제4장 불교의 부활과 사찰령 (9쪽)



                 이처럼 조선불교는 사람과 법도가 함께 뒤돌아볼 기회도 없이 외톨

               이가 되고, 기독교는 신흥세력을 조선 전 지역에 계속 전파해나갔다. 그
               러나, 명치 초년부터 일본불교가 전도의 여력이 조선 지역에 뻗치어 점

               차 조선불교에 경종을 울리는 단초가 되었다. 제일 먼저 1877년 진종본
               원사는 부산에 별원을 세우고, 같은 1881년에는 일련종, 1895년에는

               서본원사, 1898년에 정토종, 1906년에 진언종 지산파, 1906년에 조동

               종, 이어 임제종 등이 연이어 별원포교소를 설립하였다. 그러나 포교의
               주력은 일본 거류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우연히 조선인과의 교류하고

                                           33)
               자 하여도 오백 년간의 가정(苛政) 으로 모든 기력을 잃어버린 사람들에





               33) 가혹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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