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4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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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 • 『퇴옹학보』 제18집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제1차 이 조선개교를 언급하는 문헌이 부족하
다는 것이다. 부산 고덕사 후신인 가라쓰 고덕사에 남아 있는 옛 기록
으로 지금의 주직이 이를 초록(抄錄)하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은 좋으
나, 중요한 원본은 흩어져 없어지고 초록한 것도 상당수 가감(加減)이 더
해진 까닭에 당시의 현황을 상세히 알 수가 없다.
제2장 개교와 국가와의 관계 (17쪽)
개교 직전의 일본과 조선
일본과 조선과의 관계는 명치유신 후 점점 복잡해져갔고, [이러한 가운
데도] 양국 사절은 종종 왕래하기도 하였다. 일본은 조선에게 통상을 촉
구하였지만, 때마침 조선은 이태조가 집권하고 있어 개국주의를 내세우
는 분위기가 농후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원군 집권기의 쇄국주의는 쉽
게 누그러지지 않았다. 우연히 1875년 강화도 사건이 촉발하였다. 그 결
49)
과, 일본[국가]은 구로다 키요타카(黑田淸隆), 이노우에 카오루(井上馨) 두
사람에게 시켜 그 죄를 추궁하라 하니
제1조 조선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2조 상호 사신을 파견할 것, 제3
조 공문 용어 규정, 제4조 부산 그 외 2개의 항을 개항하고 일본과
통상을 하고, 일본인 거주를 허락할 것, 또 개항장에 일본 관리관
49) 이 두 사람 모두 강화도조약 체결에 참여한 인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