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6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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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 • 『퇴옹학보』 제18집
라시마 무네노리(寺島宗則)氏와 함께 본원사관장 엄여상인(嚴如上人)에게 편
지를 보내어 조선 개교의 일을 종용(慫慂)하고 또한 의뢰하였다. 즉시 본원
사는 제1차 개교에 공로가 있는 淨信의 후예 오쿠무라 엔신 및 히라노 케이
스이(平野惠粹) 두 승려를 발탁하여 부산에 별원을 세울 것을 명받았다.
여기서 주의할만한 사실은 大久保 내무경 등 국가의 주요 직책의 인
물들이 조선 개교에 대해 오로지 우리 본원사를 지적하였다는 점이다.
우리 본원사는 앞서 淨信의 부산 고덕사를 설립한 것도 있고, 이어 도쿠
가와시대에는 조선의 사절이 왔을 때는 도쿄 아사쿠사(淺草) 본원사를
숙소로 제공했다는 점 등 특수관계가 있었던 것으로, 대대로 아사쿠사
윤번은 매우 공평하게 교가(敎家)의 입장에서 조선의 사절을 보호하고
또한 편의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조선 측에서도 본원사를 큰 덕
으로 생각했다는 점 등, 조선과의 인연이 개교에 있어 국가의 요로(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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路) 로 본원사를 지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본원사의 포부 (20쪽)
당시 본원사 계획은 먼저 부산에 별원을 창설하여 국위 진전에 앞장
서서 조선의 가장 중요한 지역에 별원 및 포교소를 건설하여 재류일본
인의 포교 전도는 물론, 나아가 교육과 사회개선을 위해 종사하고, 한편
51)
으로는 조선동포의 개교를 기획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각 거류민 의
50) 요직, 중요한 위치.
51) 재류일본인, 거류민의 표현이 중복되고 있지만 이는 모두 조선에 체재한 일본인을 의미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