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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개교50년지(朝鮮開敎五十年誌)』 번역 • 297
교육을 창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선사업 대부분이 별원의 손에 의해
시작되었다.
한편 조선동포의 교화도 크게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어서 조
52)
선동포 일본유학은 본원사 별원이 기단(起端) 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양국국교 간의 중요한 알선에 참여하여 음양으로 원활히 진행될 수 있
도록 노력하였다. 당시 본원사는 오늘날 [일본내] 일본불교 각 종파와 같
이 장제(葬祭)만 하면 되는 것과는 매우 다른 상황이었다.
한편, 1904년 본원사에 소위 염불내국(念佛內局)이 조직되었다. 이 내
국은 이름을 재정정리(財政整理)로, 예전부터 기존 본원사가 가진 견식을
극도로 실추시킨 내국이었다. 즉 이 내국이 표방하는 재정정리를 위해
개교 상에도 일대 좌절을 초래하여 모든 계획이 예정의 10분의 1도 실
현되지 못한 것은 실로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도 임지(任地)에 있
는 각 개교사는 늘 인고를 참고 어디서든 개척자의 쟁기를 들고, 재류민
의 지도자로서, 또는 각 종파의 선구자로서 보여준 높은 의기와 열성은
필시 오늘날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고귀한 것이었다.
제3장 부산 개교 (21쪽)
당시의 부산
본디 부산은 임진왜란 이전부터 일본 거류민이 많았고 그 후 3백 여
며 원서에 따라 그대로 번역하였다.
52) 시작을 의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