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9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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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개교50년지(朝鮮開敎五十年誌)』 번역 • 299
편하여 해협왕래의 편선은 간코마루(貫効丸)라는 180톤의 상선 1척으
로 월 1회 나가사키(長崎) 부산 간을 왕복하는 것에 불과한 상황이었기
에 출발은 실로 쉽지 않았다.
肥前國松浦郡唐津町中町高德寺住職
訓道 奧 村 圓 心
越中國礪波郡太田村專念寺衆徒
敎導職試補 平 野 惠 粹
위의 사람들이 국민교도를 위해 조선에 출장하여 체재할 때 지장이
없도록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54)
眞宗東派管長 本願寺住職
大敎正 大 谷 光 勝 印
1877년 9월 13일
管理官 近藤鎭鋤 殿
양사(兩師)는 위와 같이 관장의 첨서(添書)를 가지고 9월 25일 오쿠라
키와치로(大倉喜八郞)씨 등과 함께 나가사키에서 승선, 25일 고토(五島)에
27일 쓰시마(對馬)항에 들러 부산에 도착하였는데, 그것이 28일이었다.
부산에 상륙한 양사는 바로 도미야구미(富屋組) 靑山如竹씨의 집에 들
러 近藤관리관에게 관장의 서간을 드리고 원조를 구하였다. 近藤관리
54) 이 번역문도 우쓰노미야 메구미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