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0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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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 『퇴옹학보』 제18집




            관은 이미 그 내용에 대해 내명(內命)을 받았기 때문에 기뻐하며 정성스

            럽게 별원 건설을 전했다. 靑山씨 등의 알선으로 10월 1일 도장에 해당
                                                                     55)
            하는 관사의 차용액을 관리관에게 빌려 서관에 있는 다이슈(對州) 에
            있는 대면소(對面所)를 대여하였다. 즉 이것이 오늘날의 부산별원으로 이

            건물은 길이 25간, 안 길이 7간짜리 3동의 웅대한 건물이었지만, 오랫동
            안 버려져 있었기에 꽤 파손되어 있었다. 관목(官木)을 불하(拂下)받아 보수

            를 하면서 불상을 봉안하고 그렇게 마침내 이전한 것이 10월 27일이었다.
                                                               56)
            이리하여 드디어 포교를 개시한 11월 8일, 부산항 용번(用番)  阿比留護
            助, 眞島仙藏, 靑山如竹, 高木政太郞 등 부산의 유식 계급의 수십 명이 타

            지에서 처음으로 종의(宗義)를 듣고 부처의 큰 자비로 감격한 날이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현 상황에서 다소 불편함이 있었는데 건물과

            토지 800평을 장기간 대여할 청원서를 관리관을 거쳐 정부에 제출하였

            다. 12월 8일 외무성으로부터 그 청원을 허가하였기에 드디어 조선 개
            교 근본 도장의 기초가 이루어졌다. 여기에 본원사 별원 문패를 거는 데

            는 대대적으로 수선이 필요하였다. 그리하여 奧村師는 예산 및 설계서
            를 제작하여 11년 1월 3일 平野師로 하여금 본산으로 귀국하게 하여 청

            을 하니, 곧바로 허가를 받아 3월 23일 나가사키 목수, 수선쟁이 吉栽가

            작업에 차츰 참여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10개월 후 즉 12월에 준공하여
            비로소 본원사별원이라 이름 짓고 奧村師가 제1기 윤번(輪番)을 배명받





            55)  대마도(對馬)의 다른 이름.
            56)  에도막부의 노중(老中:에도막부 장군에 직속하여 정무를 총찰하고 다이묘(大名)를 감독하
               던 직책 또는 사람 =閣老) 또는 장년층이 매월 한 명씩 교대로 정무를 보는 것. 월번(月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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