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1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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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개교50년지(朝鮮開敎五十年誌)』 번역 • 301
았던 것이다.
유학생 파견 (25쪽)
조선인에게 교리를 전하는 데는 조선어 사용과 동시에 가장 먼저 필
요한 조건이 조선인의 정신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개
교 시 개교사는 일본 내지에서 갑작스럽게 차출되어 온 사람보다는 조
선에 오랫동안 거주한 경험이 있는 자가 좋다. 더구나 소년의 나이에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선에서 양성된 자라면 더욱 좋다.
奧村師는 일찍이 이러한 생각을 품고 교토 본산과는 이전부터 부산
에 조선어학사를 창설하고 장래 개교사를 조선에서 양성하고자 하였
다. 즉, 1878년 1월 平野師 귀국과 함께 본산은 谷覺立, 楓玄哲, 蓮元憲
城, 3명에게 조선 유학을 명하고 이와 같은 업무를 수행하게 하였다.
이리하여 1878년 8월 다이슈(對州)통역관으로 명받은 浦瀨祐씨를 초
대하여 이들 유학생을 대상으로 조선어 학습을 하게 하였다. 1878년 12
월에는 鈴木順見, 1879년 6월에는 金色良忍 등이 어학생 신분으로 부산
에 왔고 이어 蓮元康丸 등, 일시적으로 부산별원은 이들 학생으로 공간이
협소할 정도였다. 이들 학생은 열심히 조선어연구를 하면서 인정풍속(人
情風俗) 시찰을 하고, 이후에는 기세가 넘치면서 실로 왕성한 활동을 전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