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3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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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개교50년지(朝鮮開敎五十年誌)』 번역 • 303




               조선의 승려 또한 일본불교가 자극이 되어 날이 갈수록 별원을 방문하

               는 자가 많아져 성황을 이루게 되고 1일 50여 명이 넘을 정도라 한다.
                 그러나 진실로 자극을 받기 위해 오는 자는 소수로, 대부분은 호기

               심과 뜨거운 환대를 기뻐하여 모였다고 하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奧村

               師는 이들 조선승려에게 때로는 시문으로, 때로는 국사를 논하고, 때로
               는 일본의 문화를 말하는 등, 그 드넓은 지식은 자연히 그들을 덕화(德

                 58)
               化) 시키고 일본거류민과의 융화를 하는 데 있어 대단한 공헌을 한 것
               은 물론이다.



               제4장 원산 개교 (27쪽)



                 별원 창건



                 원산은 북조선 지방의 유일한 좋은 항구로 예부터 선박이 빈번한 왕

               래로 매우 유명하다. 강화도조약 체결 후, 이 항구가 개항장으로 협약이
               성립된 것은 1879년 8월, 이리하여 관리관이 부임하여 개항한 것은

               1880년 5월이었다.

                 이보다 앞서 본원사에서는 원산개항 협약이 맺어진 것을 듣자마자,
               1880년 3월 1일 원산에 설교장 설치의 청원을 당시 관리관 마에다 켄

               키치(前田獻吉)氏――前田는 원산 관리관으로 결정은 되었지만, 아직 부





               58) 덕행으로 교화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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