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6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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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 • 『퇴옹학보』 제18집




               당시의 원산 (30쪽)



               당시 원산은 거류지 시작으로서 재류일본인이 겨우 100명 내외, 가

            구 수는 30호에 불과했다. 더구나 이들의 대부분은 미쓰미시(三菱), 스미

            토모(住友), 오쿠라(大倉) 등의 출장소에서 근무하였고, 부산에 점포를 소
            유하는 무역상의 지점 및 그 가족들이다. 이들이 奧村師 일행과 같은 배

            를 타고 들어온 것으로 봐서도, 奧村師가 개교 첫걸음을 시작한 [원산은]

            당시의 부산보다도 더 적막했다. 그뿐만 아니라 호랑이와 늑대가 항상
            나타나 노인과 어린이를 위협하고 흉적(凶賊)은 빈번하게 무리를 이루어

            거류민을 범하는 상황으로 인심도 매우 흉흉하였다.
               특히, 일본과 조선과의 통상은 아직 개척되지 않아서 주변 사람들은

            협박과 적개심을 가지고 이들을 대하였고, 조선 측 시장에도 일본인을

            허용하지 않는 모양새였기에 奧村師의 고심은 실로 충분히 짐작할 만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재류일본인 중에도 승려가 있었던 까닭에 먼저 조선 승려의
            방문을 받아 이들을 선전으로 활용하고, 그리하여 일반 인사도 점차 접

            근하기 시작하자 날이 갈수록 奧村師 등은 그들을 맞이하느라 매우 분

            주한 날을 보냈다.



               동포 중심의 포교 (31쪽)



               원산이 위와 같은 상황이어서 奧村師 일행에게 있어서 많은 고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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