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7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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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개교50년지(朝鮮開敎五十年誌)』 번역 • 307




               있었던 것은 말할 나위 없지만, 재류일본인이 소수였던 것은 개교의 주

               된 목적인 조선인에게 대부분의 힘을 쏟을 수 있다는 점에서 타고난 행
               운이었다. 특히 재류일본인에 대한 조선인의 악감정을 간파한 개교사 등

               은 그 융화에 전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다년의 가혹한 정치와 쇄국이라는 상황에 놓인 조선인들의
               가슴 속에 이미 깊이 뿌리 내린 시의심(淸疑心)은 짧은 시일 내에 사라지

               는 것도 아니고, 특히 신앙 면에 있어 타락하여 삼보(三寶)의 존경을 분

               별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여전히 진종교의 존재를 알 리가 없었다. 따라
               서 그들을 대하는 데는 형식적인 포교는 하등의 가치도 없다는 것을 이

               미 눈치챈 奧村師 일행은 우선 좌담으로, 물질로, 교우(交遊)로, 후우(厚
               遇)에 모든 방면에서 성의를 피력하였다. 처음에는 호기심을 가지고 본

               원사에 모인 조선의 승려도 본원사 측의 이러한 태도에 의심도 점점 얼

               음 녹듯이 사라지고, 나아가 일반 재류일본인에 대한 태도도 날을 거듭
               할수록 온화해져 갔다. 이리하여 만약에 진종교의에 귀를 기울이는 자

               라면 몇 주간 별원 내에 머물게 하여 가르치고 인도하는 수고를 절대 아
               끼지 않았다. 이러한 연유인지 멀리서 동포 본원사 승려의 덕망을 연모

               하고 입문하는 자[조선인]가 많았다. 따라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선어

               로 법회를 열고 진종교지(眞宗敎旨)를 조선어로 번역하여 참배자에게 교
               리를 나누어 주는 등 한때는 그 활동과 함께 대단한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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