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0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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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 『퇴옹학보』 제18집




            의 부사 및 총영사의 양해를 얻어 100여 명 중 60여 명을 선별하여 본

            원사에 집합을 시켜 한 사람마다 조선 돈 백 푼씩을 주고 짚을 구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열흘은 풍설의 날로 포승끈을 만들게 하고 스무날은

            맑은 날로 삼아 거류지에서 노동하게 하였다. 그들의 손으로 빚은 포승

            끈을 미쓰비시가 사들이고 이를 여비로 교환하여 돌아가게 하였다고
            한다. 당시 奧村師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1881년 3월 16일 원산개항을 위하여 조선 팔도에서 모인 인부는
                 전체  1,000여  명,  5월부터  10월까지  거류지에  체재하고  그중

                 850~860명은 남편들 귀국길에 함께한다 해도 100 명 남짓의 인
                 부는 질병과 부채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 굶어 죽는 자도 있었다.
                 圓心은 이를 알고 원산에 소재한 한국 관리를 초대하여 고하기를,
                 “귀국의 인부가 굶주림에 빠져있는데, 한국 정부에서는 이를 구하

                 지 않고 있으니”, 한국 관리 말하기를 “그들은 무뢰한으로 도움을
                 줄 필요가 없으니”, 圓心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내가 이를 도와주
                 겠노라. 圓心이 [조선에] 출장을 온 이유는 한 사람의 거류민을 교도
                                                          62)
                 하는 것뿐만 아니라, 귀국의 백성도 이세안락(二世安樂) 의 몸이 되
                 게 하기 위함으로 지금 아사(餓死)에 허덕이는 것을 듣고 방관할 수
                 없다. [내가] 원하는 바는 귀국 부사가 승낙만 해준다면 우리가 이를
                 구제할 방법을 마련하겠도다.” 한국 관리가 이를 부사에게 고하여
                 부사가 이를 허락하자, 圓心이 말하건대, “100여 명 중에서 매우

                 궁핍한 자 60여 명을 골라 교장에 집합하여 타이르니, 너 나 할 것
                 없이 조선팔도에서 먼 곳을 마다하지 않고 여기에 모였더라. 생각건


            62) 현세와 내세에 안락을 얻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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