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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개교50년지(朝鮮開敎五十年誌)』 번역 • 317




                    에는 영사관 모든 직원과 은행, 우편, 선박회사 등의 관계자들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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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하여 축하하였다. 그 후 삼각산(三角山) 의 승려 5명이 내방하고
                    이어서 수십 명이 내원하여 종교 관계자들과도 간담하였다. 또한
                    동원(同院)에서는 작년 12월 6일 지난 1884년 경성 조난자를 위한
                    법회를 열었고, 또 올해 4월 17일 아마기현(天城縣)을 내항한 승조
                    사관(乘組士官)의 청에 의해 법화를 나눈 인연도 있고 하여, 그 후 승
                    조원은 동원으로 내방하여 종교상의 간담을 하기도 하였다.




                 라고 기술되어 있었다. 더구나 1889년 이시카와 가오루(石川馨)師에
               따른 보고서에는




                    인천지원 설교는 매주 금요일 이를 들으려는 참청자(參聽者)는 작년
                    10월경까지 매회 참석자 30~40명 정도에 그쳤지만, 점차 그 수가
                    증가하여 매회 평균 60명에 이르러 어려운 종의를 설파해도 조금

                    씩 이해하는 자가 생기게 되었다.
                    도내 거류민의 장례는 당초 신도(神道)에서 담당하였지만, 현재 교
                    파의 구별 없이 모두 지원(支院)에서 이를 부담하여 육해군 및 거류

                    민 일반인민 묘지의 관리도 영사관과 거류지 의회로부터 본원이
                    의뢰받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侍蕫寮조사, 조선포교자료에 따름)


                 이상의 내용으로 당시 포교상태의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하기는 충분

               할 것이다.






               68) 서울 ‘북한산’의 다른 이름.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세 봉우리가 있어 이렇게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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