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3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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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개교50년지(朝鮮開敎五十年誌)』 번역 • 323
이상은 당시 松見師가 본산에 올린 상신이다. 그러나 이는 채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1895년 2월 7일 지원을 경성별원으로 개칭하고, 동시
에 부산별원 인천지원을 경성별원 인천지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松見
師는 초대 윤번이 되었다. 경성별원의 독립과 함께 별원 신축의 뜻이 드
디어 결실을 이루었는데, 그 부지가 江南哲夫, 山本淸記氏 등의 소유였
던 대지(현재 별원 및 소학교 소재지), 즉, 화성대(和城臺) 4,300평 구입 계약
을 3월 체결하였던 것이다. 이 땅은 임진왜란에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의 진영으로 경성시가를 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남산 중턱으로 경
성 유일의 경승지이다. 여기에 건축된 별원을 향후 남산본원사로 부르
기로 하였다.
7월 5일 본산으로부터 목상 본존을 하사받아 봉안하게 되었지만, 이
본존은 25일 松見師가 받들어 용산에서 입성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맨 앞에 오관기(五貫旗)를 앞세우고 그 뒤로 안내를 하는 中村再造
氏가 말을 타고 있었으며 조선인 승려가 대략 20명이 뒤따랐다. 이
어서 조선에서 근무한 東光憲雄가 있고 본존(궤에 들어 있음)을 짊어
진 사람이 4명, 사방을 경호하는 소방수 40명과 약간의 경찰관, 그
리고 대(臺)를 운반하는 사람이 보였다. 산기(山旗), 다음이 윤번, 그
73)
리고 세와가타(世話方) 남녀 200명이었다.
73) 이 번역도 우쓰노미야 메구미 선생님으로부터 대부분 도움을 받았다. 또한 원문의 내용
이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어 이해를 돕기 위해 번역자가 내용을 추가하였다. 참고로 이 문
장에서 세와가타(世話方)의 세와(世話)는 일본어로 도와줌, 보살핌, 소개함, 폐, 신세 등
으로 해석이 된다. 그리고 가타(方)는 사람을 의미한다. 즉 세와가타는 돌보아 주는 사람,
시중드는 사람, 관리하는 사람, 소개하는 사람, 담당하는 사람 등 다양한 해석으로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