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4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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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 • 『퇴옹학보』 제18집
라는 당당한 행렬로 용산에서 주동(鑄洞) 본원사까지 장시간 행렬을
하였는데 당시의 전반적인 상황은 짐작이 갈 것이다.
74)
조선왕조 의 하사금(下賜金) (49쪽)
1897년 6월 松見師 퇴직 뒤를 이어 후쿠다 겐쥬(福田硯壽)師가 윤번으
로 부임하였다. 福田師가 재직 중에는 건축 준비기라고 할 정도로 자금
모집 방법 등에 대해 문신도는 여러 차례 협의를 진행하였는데, 때마침
한국 황실이 옛날의 관계도 있고 하여 금 3,000원을 건축비용으로 하
사한다는 내용을 대리공사 가토 마쓰오(加藤增雄)氏로부터 통지받았다.
일동은 크게 한국 정부의 후한 뜻에 감격하여 준비하는 데 한층 더 노
력을 기울였음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사들인 부지에 관해 문제가 생
겨 교토 본산으로부터 太田祐慶師가 특파되어 1898년 6월 太田師가 경
성에 도착하였다.
太田師를 마중 나간 경성별원에서는 바로 세와카타(世話方)인 총대를
집합시켜 건축에 대한 대대적인 논의가 진행되었다. 太田師는 약 1주일
간 체재하였는데 그사이 부지를 포함한 그 밖의 장소를 시찰하고 세와
가타 총대를 일일이 방문하여 건축에 관해 간담을 나누고 경성을 떠났
다. 이 太田師의 경성 방문이 건축에 관한 본산 의지 결정을 촉구시킨
된다. 이 번역문에서는 문장 속 적절한 의미 전달을 위해 일본어 세와가타(世話方)를 그
대로 사용하였다.
74) 일본어 원문에서는 李王朝로 되어 있는 것을 조선왕조로 번역하였다. 또한 번역문에는 조
선, 한국이라는 용어가 혼합되어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원문에 따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