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5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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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개교50년지(朝鮮開敎五十年誌)』 번역 • 325




               것은 물론이다. 또한, 그 사이 위원인 上洛折衝 등은 준비에 매우 바쁜

               날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그 해도 저물었다.
                 그러던 한편, 거류민 사이에서는 건축 계획이 수립되고 벌써 3년이 지

               났는데도, 그것도 조선왕조의 하사금이 있었음에도 건축을 완성하지 못

               해 여기저기서 태만하기 이를 데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리(庫裡, 임시 본당)의 건축 (50쪽)



                 여러 곳에서 공격을 받으면서도 적절한 기회는 오지 않고 관계자는

               점점 초조해졌다. 1899년 6월 福田師는 협의의 결과, 아래와 같이 상신
               서를 품고 상경하였다.




                    상신서



                    경성별원 소속 세와가타(世話方) 총대 아무개 삼가 말씀 아뢰옵니다.
                    이번 경성별원 건축 일에 대해서는 작년에 위원 총대가 상경하여
                    청원을 드린바 그 뜻을 헤아리어 건축자금을 하사함에 일동 기쁨
                    을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어 재류 신도 중 기부 모금에 착

                    수한 결과 오늘까지 모금액은 3,000엔에 달하였습니다. 한편, 부
                              75)
                    지 개착(開鑿)  및 땅 고르기를 시작하여 대체적으로 원만하게 진
                    행되었습니다. [이 공사는] 현재 국내외 정황을 참조하여 각 포교 상

                    필요가 있어서 하는 것이고, [따라서] 공사 착수는 일각을 다투는 시



               75) 산을 뚫거나 땅을 파서 길이나 운하 등을 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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