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1 - 퇴옹학보 제18집
P. 331
『조선개교50년지(朝鮮開敎五十年誌)』 번역 • 331
그러나 井波師도 매우 확고한 결심을 하였고 더구나 취임을 서둘렀기
에 앞으로 별원은 자치 경영을 하는 것으로 정하였다. 그리하여, 出雲路
師의 동의를 얻어 스스로 유임(留任)의 뜻을 밝혔다.
그러한 가운데 고통스러운 설날을 맞이했다. 1904년 2월 9일, 작년
부터 자주 긴박하게 돌아가는 일본과 러시아의 국교가 드디어 단절되고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즉 이른 아침에 인천 앞바다 근처 포성이 탕탕 울
리면서 경성 사람들의 마음을 위협했다. 거류민들은 짚신을 장만하고
도시락을 싸안고 늦은 밤까지 불을 끄고 꼬박 뜬눈으로 밤을 새웠는데,
차츰 파견군이 입성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井波師는 출정군대를 위해
위문 포교를 개시하고 각처 관사를 방문하여 크게 사기를 진작시키고
진충보국(盡忠報國)의 정신을 설하였다. 하지만, 전란으로 물가는 급등하
86)
고 히로(ヒ-ロ-) 한 개가 24전 정도였기에 거래는 생각조차 못 하고, 시
장의 경기는 나날이 침체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본사 보조금이 전부 폐
지되었기에 별원 재정 상태는 매우 절박한 상황이었다. 한편, 그러나 이
상태를 본 신도는 자꾸 윤번이 이직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井波師에게
부인과 가족이 별원에 올 수 있도록 촉구하였다. 井波師는 최악의 궁핍
한 상황 속에서도 신도의 불안을 없애기 위해 부인을 부르는 등 그의 크
나큰 고충에 동정심이 저절로 생겼다.
86) 村井兄弟商會’라는 회사가 판매한 담배 브랜드 이름, 1904년 일본 국내에서 판매한 담
‘
배가 5~8전이었는데, 24전이면 상당히 비싼 값이다. (참고자료:たばこ-吉田秀雄記念事
業財団:http://w w w.yhmf.jp/pdf/activit y/adstudies/vol_36_05.
pdf 2021.06.12. 열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