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6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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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6 • 『퇴옹학보』 제18집
좋은 담당자였고, 본산 특파의 감독의 荒谷孫大郞氏, 지방출신의
감독 平原喜造氏 등과 함께 독신(篤信)의 동행인 공장에서 일하는
목수 등도 인천별원 건축에 경험 있는 자로, 모두 이들 위아래 사
람들의 성실함이 하나의 원이 되어 이 대사업이 완성하였던 것입니
다. 이렇게 말하면 공사는 매우 순조롭게 진행한 것 같지만, 안으
로는 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고리(庫裡)이전이 청부자(請負者)
의 잘못된 예상으로 시일이 길어져 수개월에 걸쳐도 진척이 안되
고, 별원의 강력한 독촉에 대하여 어떤 때는 칼을 빼 들고 위협하
러 온 적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공인 수십 명이 무단으로 본당의
옥상에 올라가 모든 것을 새롭게 다시 건축하려고 기와를 뜯어내
고 있어 결국 경찰의 지원을 받은 적도 있다. 한편, 교토에서는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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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과의 문제로 당시의 교학부장 豅経丸師가 진퇴사(進退伺) 를
제출한 적도 있었고, 또는 石垣 공사직인(工事職人)이 집요한 난폭을
부리는 등 지금 생각해도 끔찍합니다. 그러나 다수의 간부는 항상
통일을 잘 유지하고 일치 협력한 것은 다행이었습니다.
이리하여 11월 17일 천불회를 거행하고 18일부터 이틀에 걸쳐 경찬
법회(慶讚法會)를 열었다. 법회에는 참배하는 伊藤총감을 비롯하여 내외
문무백관(文武百官) 문신도가 참가하여 감격이 극에 달했다고 한다.
조선 경성에 있는 손님 가운데 본원사 본당 낙성을 축하하며
井 上 圓 了
91) 거취 문의, (관리 등이) 직무상 과실이 있을 때 진퇴 문제를 상사에게 물어봄, 그 때문에
제출하는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