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32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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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 • 『퇴옹학보』 제18집




               본당의 건축 착수 (58쪽)



               러일전쟁도 처음에는 크게 사람들이 불안했지만 연전연승(連戰連勝)의

            소식과 함께 인기도 크게 고조되고 별원의 궁핍도 점차 빛을 보게 되었

            다. 여기에 일시 정체 상태였던 본당 건축도 드디어 실현할 기회가 왔다.
               1904년 11월 본산에 상신서 제출과 함께 윤번이 상경하여




               1.  별원 소유지 내 옛 부지와 신부지 중 소학교에 무상대여하는 500
                 평을 합하여 매각하고 이를 비용 일부로 할 것.

               2.  러일전쟁 성적이 일본에 유리한 결과로 시장 경기도 인기도 만회
                 되면 기부금 모집에 좋은 기회가 될 것

               3.  현재 별원은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일반의 정

                 에 호소하기는 쉬울 것



               등의 사정을 구진(具陳)하고 열심히 설명한 결과, 곧바로 본당 건축 인
            가 지령이 내려졌다. 12월 3일, 4일에 걸쳐 신도 총대 세와가타(世話方)가

            집합, 건축에 관한 협의를 열었다. 森勝次, 山口太兵衛, 和田常一, 淵上貞

            助, 關繁太郞, 梶原末太郞, 中村再造, 藤井友吉, 久保田禎造, 木島平兵衛,
            增田三穗, 羽田彌五郞, 河村治平, 河村辰三郞, 田中良助, 原伊三郞, 岡與

            一, 三好和三郞, 中村政次郞, 藤富國太郞, 田端俊純, 森久兵衛, 平原喜造,

            天日常太郞 등이 주된 인물이다.
               1905년 1월 16일 건축비 모집을 개시하고 각 관계자의 필사적인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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