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2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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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2 • 『퇴옹학보』 제18집
로 건너가 며칠 체재 후 13일 부산에 도착하여, 곧장 伊集院영사에게
포교지를 목포 부근으로 결정한다는 뜻을 말하였다. 이에 영사의 찬성
을 얻고, 또한 25일 식기 그 외 일용품을 준비하여 조선 기선에 편승하
여 목포에 도착했다. 목포 부근에 집을 구하자고자 하였으나 현지인이
어떻게도 허락을 해주질 않았다. 공허하게 목포에 체재하길 20일간, 그
동안 실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이윽고 목포를 포기하고 9
월 23일 광주부에 도착했다.
한편, 광주에는 예전부터 원산에서, 그리고 그 후 조선에서 교류가 꽤
있었던 윤충렬씨(尹雄烈氏)가 관찰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윤씨는 진심으
로 奧村師를 환영하고 바로 여관으로 안내하는 한편 경찰에 명하여 奧
村師를 위해 거처를 마련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다행스럽게도 서문 바
깥 끝자락 錫哲의 집(부지 1,000평)을 금 100원으로 구입하여 드디어 살
집을 정할 수 있었다.
남매의 해후(邂逅)와 奧村師의 경영 (69쪽)
집을 빌린 奧村師는 마침 거류하는 일본인도 없고 참담한 어려움에
빠졌다. 10월 어느 날 奧村師는 목포에 가려고 혼자 길을 서둘러 가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아무래도 일본인 같은 사람이 보였다. 그것도 한 사
람은 여성처럼 보였는데 말을 타고 있었다. 이런 곳에 일본인의 모습은
어찌 된 영문지 의아해하며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보니 예상외로 말을
탄 부인은 奧村師의 친동생인 五百子여사로, 또 한 사람은 白川健三氏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