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5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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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개교50년지(朝鮮開敎五十年誌)』 번역 • 345
이 내용은 한 해가 다 저물어 갈 무렵의 회고이다. 1877년 후 부산, 원
산을 시작하여 만 20년 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위해 남선북마(南船北馬) 105)
로 몸을 희생해 온 과거를 회고하였을 때, 60의 노옹(老翁)은 참으로 감개
무량하다. 오늘날 어떠한 불안감도 없이 이 발자취를 경솔하게 106) 여기
는 자, 합장하여 공경하는 마음으로 구애하고 참회해야 할 것이다.
포교의견 상신 (71쪽)
1898년을 맞이하여 奧村師는 광주개교에 대해서 대강의 목표도 결
정하였기에 포교목적 및 방법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상신서를 본산에
제출하였다.
첫째, 식산흥업(殖産興業)을 장려하여 가능한 한 물질적인 개발에
힘쓸 것
예를 들어 농업개량을 도모하고 양잠을 장려함으로써 수출품을
늘려 그 지역에서 산출되는 보리를 이용하여 사람들이 선호하는
소면 제조법을 가르치는 것 등. 그리고 또 부근 각지역에서 생산되
는 제지산업의 수출의 길 열 것.
둘째, 승속(僧俗)을 불문하고 지방의 저명한 인물들에게 일본 견학
105) 중국의 남쪽은 강이 많아서 배를 이용하고 북쪽은 산과 사막이 많아서 말을 이용한다
는 뜻으로, 늘 쉬지 않고 여기저기 여행을 하거나 돌아다님을 이르는 말.
106) 이 강조점은 원문 그대로 인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