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6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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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6 • 『퇴옹학보』 제18집
을 장려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개발과 보급을 도모할 것
일본 견학을 하는 자는 반드시 1년에 2명 이상이어야 하고 또 내지
포교에 힘쓰는 자는 승속 불문하고 특별취급을 받도록 상선회사
를 대상으로 총무님께서 조회를 할 것(단, 내지는 조선 내지를 일컬음)
셋째, 학교를 설립하여 청년을 계발(啓發)할 것
먼저 그들에게 의심받지 않도록 한인(韓人)교사 한 명을 고용하고,
따라서 모든 생도는 월사금을 면제하며 또 늘 사용하는 종이, 연
필, 묵을 지급하고, 처음에는 오로지 기존 학예(學藝)를 이수하게
하고 자연 산술, 지리, 역사 등에 학습하게 하고, 마지막에는 종교
적인 윤리를 교육할 것, 그리고 또 생도는 대개 10여 명 정도로 한
정하고 관찰사 지방관 등에게 교섭하여 가능한 중간 정도 이상의
생활을 하는 준수한 인재를 발탁할 것
이 상신이 교토 본산에 보내짐과 동시에 奧村師의 내밀(內密)을 받은
五百子여사는 상경하여 외무대신 외 臺閣諸公 유력자들 사이를 분주하
게 오갔다. 표면적으로 南條文雄박사는 본원사 총대로서 외무성에 광
주부 학교 설립 보조금 하부와 관련하여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외무성
은 본디 최초 약속대로 奧村師의 계획을 찬조하고 즉시 보조금을 하부
하였다. 五百子여사는 속각학교(速刻學校) 교사, 의사, 취사부, 그 외 다수
사람들을 데리고 4월 광주로 출장을 가게 되는데, 이것이 광주 일본인
이 대거 들어온 최초의 일로, 그때까지 圓心師 혼자뿐이었다. 이로써 광
주에서 圓心, 五百子 형제는 일본인 최초의 개척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