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7 - 퇴옹학보 제18집
P. 347
『조선개교50년지(朝鮮開敎五十年誌)』 번역 • 347
조선동포 최초의 본산 참배 (73쪽)
때마침 1898년 4월은 교토 본원사에서 교여상인(敎如上人) 기념 대법
회가 집행되었다. 奧村師는 이때를 기회로 崔幹鎭, 崔世八의 두 사람을
동행하여 본산에 참배하고, 일본 문물을 접하게 되면 개교하는 데 있어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뜻을 관찰사 尹雄烈氏에
게 상담하자 윤씨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며 양손 들고 찬성하였다.
奧村師는 두 사람을 데리고 목포에 들어가 久水영사에게 알아보게 하고
군함을 타고 부산에 도착, 부산에서 배편으로 갈아타고 교토에 도착하
였다.
곧바로 본산으로 두 사람이 참배를 위해 교토로 들어갈 뜻을 상신하
자 본산에서도 외국의 진귀한 손님이기에 정중한 대접을 하였다. 법회
참관도 허락받고, 참배 때 여유가 있을 때는 교토 각 방면을 시찰하였
다. 이러한 경험으로 두 사람은 奧村師 상상 이상으로 많은 지식을 얻었
음은 당연지사다. 체재 중 두 사람의 모든 비용 및 여비는 모두 본산에
서 부담하였다. 두 사람은 한층 호감을 느끼며 5월 중순 무렵 영광스럽
게 귀국하였다.
귀국 후 두 사람은 승려와 속인, 노인과 어린이를 불문하고 일본의 문
명과 본원사의 성대한 대접을 선전하였다. 이 이야기를 듣기 위해 10리
내외 떨어진 곳에서 奧村師의 거처에 모였는데 남녀가 많았을 때는 200
여 명을 넘었다고 한다. 조선인이 신도로서 포교사와 함께 본산에 참배
한 것은 이것이 최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