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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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선의 이해와 실천을 위한 시론 • 37
기까지는 귀로 듣고 믿는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원래 문장을 ‘9지
에 이르기까지는’으로 단순화하였다. 바로 뒤의 ‘~에 이르기까지’, 혹은
‘나아가’의 뜻을 갖는 내지(乃至)가 이것을 대신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
이다. 다만 일체중생을 생략하지 않으면 일체중생과 10지 보살, 9지 보
살이 구분되는 관계에 있게 된다. 9지, 10지, 등각에 이르기까지 모두
깨닫지 못한 중생 범부임을 강조하는 성철선의 입장에서 보살과 일체중
생을 구분하는 이 구절은 설법의 효과를 떨어뜨린다. 그래서 이것을 생
략하여 보살의 간접적 깨달음과 부처의 직접적 깨달음을 명확하게 대
비하고자 한 것이다.
다만 성철스님은 10지 보살이 부처와 마찬가지로 눈으로 직접 보는
차원에 있다는 이 문장을 제한적으로 인정한다. 원래 『대열반경』에는
안견(眼見), 문견(聞見)과 관련하여 모순된 내용이 발견된다. 즉 바로 앞,
4-9의 인용문에 보인 것처럼 부처는 안견(眼見)이므로 명료하고, 10지
29)
보살은 문견(聞見)이므로 명료하지 못하다 고 정의해놓고, 다시 이 인
용문과 같이 10지 보살은 제불여래와 마찬가지로 안견(眼見)한다는 문
장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隋)의 관정(灌頂)은 이 모순을 인식하여
10지 보살이 문견(聞見)과 안견(眼見)의 차원에 걸쳐 있고, 오직 부처만이
직접 확인하는 안견(眼見)의 경지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 30)
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청량스님은 10지 초지 이전의 보살은 문견(聞見)하
29) 『大般涅槃經』(T12, 0772b), “諸佛世尊眼見佛性, 如於掌中觀阿摩勒. 十住菩薩聞見佛性,
故不了了.”
30) 灌頂撰, 『大般涅槃經疏』(T38n, 0181a), “此中應作四句, 第十住亦聞見亦眼見, 九地已下但
有聞見, 佛地但有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