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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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선의 이해와 실천을 위한 시론 • 41
의 고요한 무심에서 활발한 묘용으로 되살아나는 일이 있어야 하기 때
문이다. 이때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공안을 들거나 선지식을 만나 활연
대오하면 모든 것이 원래 이러할 뿐임을 알게 되는데 이것이 견성의 본
뜻이다. 그와 동시에 일체의 시비분별이 떨어져 나가고, 불법의 이치와
승묘한 경계까지 모두 떨어져 나간다. 가볍고 자유롭게 세상과 한 몸으
로 만나게 되는데 이것이 크게 되살아남〔大活〕의 풍경이다. 이 사중득활
은 설법자에 따라 크게 죽어 크게 살기〔大死大活〕, 영원히 죽어 영원히 살
기〔常死常活〕, 완전히 죽어 완전히 살기〔全死全活〕, 죽은 뒤 소생하기〔死後
更蘇〕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처럼 사중득활은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무심〔一念不生〕, 앞과 뒤의 시간적 끊어짐〔前後際斷〕, 비추는 본체만
남는 경계〔照體獨立〕, 요컨대 크게 죽는 일의 실증을 전제 조건으로 한다.
성철스님은 여기에서 일념불생 등을 오매일여로 환치하고 이것을 투
과해야 진정한 견성이라고 강조점을 바꾼다. 사중득활 설법의 특징과
의의를 이해하려면 성철스님의 무심에 대한 규정이 극히 제한적이며 협
의적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성철스님은 6식의 망상이 소멸해도 제
8아뢰야식의 미세 번뇌가 남아 있다면 그것을 무기무심, 가무심이라 본
다. 무기무심은 승묘한 경계이기는 하지만 결국 제8마계이므로 이것을
33)
넘어 진여의 진무심(眞無心)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이다. 그러니까 대
혜스님이 도달했던 제7지 무상정의 몽중일여 경계는 물론이고, 8지 이
33) 『백일법문』에서는 제8아뢰야식 경계를 대무심지로 표현한다. 이것을 『선문정로』에서는
가무심으로 표현을 바꾼다. 아뢰야식 경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서 동일하지만
대무심지는 긍정적 의미부여가 없지 않다. 이에 비해 가무심은 부정과 배격의 의미가 강
하다. 『백일법문』의 관련 내용은 퇴옹성철(2014), 282-283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