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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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 『퇴옹학보』 제18집




            자가 화두에 통일되어 무심에 이르면 우주의 밖에 홀로 있는 듯하여 모

            든 경계와 절연되는 일이 일어난다. 6근, 6식, 6진이 소멸하여 보아도 보
            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맛을 모르는 상황이 되는 것

            이다.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으나 죽은 사람과 같은 상태이므로 이것을

            크게 한번 죽는다〔大死一番〕고 표현한다.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대사
            〔大死〕의 경계는 수행자들이 고대해 마지않는 승묘한 경계이다. 세간적

            망상이 더 이상 그를 침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어록에

            서는 불 꺼진 재〔死灰〕, 식은 재〔寒灰〕, 말라버린 나무〔枯木〕, 물이 끝나고
            산이 다한 자리〔水窮山盡處〕, 백 척 장대 끝〔百尺竿頭〕, 파도를 가르고 물을

            거슬러 올라가기〔衝波逆水〕 등으로 비유한다. 수행현장에서는 이 무심경
            계를 깨달음으로 착각하고 거기에 머무는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

            다. 이에 성철스님은 이것만 가지고는 결코 견성이라 할 수 없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그것은 진여와 완전히 하나 되지 못한 불완전하며 임시
            적인 차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아의 완전한 해체, 진여와의 완전한 통일이 이루어졌는지를
            점검하는 일이 필요해진다. 대혜스님, 설암스님, 고봉스님 등은 모두 이

            러한 일념불생의 자리에 이르러 잠자는 상태에도 그것이 여전히 그러한

            지를 점검하였다. 그런 뒤 자신이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을 확인하
            고 여기에서 다시 나아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는다. 이를 통해 실상의

            진리와 하나가 되는 궁극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성철스님이 점검기준으로 제시한 숙면일여의 실경 역시 완전한 깨달
            음의 길목에 있는 하나의 관문일 뿐 깨달음 그 자체가 아니다. 숙면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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