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4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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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 『퇴옹학보』 제1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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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부처가 이름은 달라도 몸은 한 몸” 이라고 하며, 특정의 것에
편중된 邊見이나 그것을 핵심으로 두는 실체관이 아니라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 비유비무의 관점을 드러낸다.
39)
그는 또 이 중도를 ‘중도=연기=진여=법성=팔정도=사성제’ 라고 다
양하게 표현하지만 이 모두를 한 가지로 연결하여 본다. 즉 이들은 모두
특정의 한 가지로 귀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중도의 불성은 空性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공이 그대로 연기이고 연기가 그대로 공이니 연기
따로 공이 없고 공 따로 연기가 없습니다. 또한 공 따로 중도 없고 중도
40)
따로 공이 없습니다.” 고 한다.
그런데 이 중도에 대한 이해에서 성철이 승조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
가는 경향은 그가 비유비무를 말하면서도 중도를 佛性으로 표현하고
그 부정적 측면보다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즉
“ 불성은 있는 것도 아니며, 없는 것도 아니며, 또한 있는 것이며 또
한 없는 것이니,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합하는 까닭에 중도라고 한
다” 41)
‘
“ 모든 분별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집착하지 않으며 머물지 않는다’
는 것은 모든 것을 부정하기 때문에 쌍차입니다. 모든 생멸을 부
정하고 나니 생멸을 바로 보는 대긍정 곧 쌍조가 됩니다. 머물지도
38) 성철(1993b), 240.
39) 성철(2014a), 227.
40) 성철(2014a), 241.
41) 성철(2014a), 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