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고경 - 2018년 8월호 Vol.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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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에 그려진 죽림칠현의 그림. 위 그림 왼쪽부터 혜강, 완적, 산도, 왕륭.
아래 그림 오른쪽부터 상수, 유령, 완함, 영계기榮啓期.
마지막의 영계기는 춘추시대의 현인으로 죽림칠현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럽히기 시작하자 둘의 사상도 서서히 변했다. 정치가 마땅히 그러해야할
질서[자연自然]를 어그러뜨리자 자연과 명교가 대립되기 시작했으며, 점차
자연을 숭상하고 명교를 비판하는 경향으로 기울어졌다. 명교가 천지의 근
본질서를 어지럽히고 만물의 본성에 위배됨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촉나
34)
라를 멸망시키는 데 일조한 종회(鍾會. 225~264)의 참소로 사마소에게 죽
임을 당한 혜강은 「태사잠太師箴」에서 일그러진 명교를 강하게 비판했다.
34) 종회가 혜강을 참소한 것은 혜강의 지혜가 뛰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세설신어·문학 제4』에 관
련된 일화가 전한다. “종회는 『재성사본론才性四本論』 쓰기를 마치고, 혜강에게 한 번 보여 주고 싶었
다. 책을 품고 혜강의 집에 갔으나 비난 받을까 두려워 감히 품속에서 책을 꺼내지 못하고, 대문 밖
멀리 던져놓고는 급히 뛰어 나왔다.” [南朝宋]劉義慶著·張萬起等譯注, 『世說新語譯注』, 北京:中華
書局, 1998,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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