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4 - 고경 - 2018년 8월호 Vol.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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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한 것이 바로 질서와 이치를 만드는 근원이다. 만물이 서로 구
                별되는 다른 종류이기에 종류마다 자기의 특징이 있다. 스스로
                의 특징이 있기에 만물은 서로 의존하며 존재한다. 만물이 생기

                고 변화하는 것을 탐구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치[理]이다.

                이치는 있음[有]에 의해 드러난다. 사물이 존재하는 데 필요한 조
                건을 자資라 하며, 조건이 그 사물이 존재하는 데 적합한 것을
                의宜라고 하며, 적당한 조건을 선택하는 것을 정情(실정에 맞음)이

                라고 한다. 지식 있는 사람이 관리가 되든 은퇴하든 그 모습은

                같지 않고, 침묵하고 말하는 방식도 다르다. 그러나 고귀한 생
                명을 유지하기 위한 조건을 찾는다는 그 정황情況은 모두에게 다
                르지 않다. 사물의 여러 이치가 동시에 존재하지만 해를 끼치지

                않기에 귀함과 천함도 나타난다. 귀함과 천함의 차이가 있는 그

                곳에 얻음과 잃음이 존재하므로 좋은 징조와 나쁜 징조가 드러
                난다. … 유有를 천시하면 반드시 형체를 도외시하게 되며, 형체
                를 도외시하면 제도를 잃어버린다. 제도를 버리면 방지하는 것

                을 소홀히 하게 되고, 방지하는 것을 소홀히 하면 반드시 예禮를
                상실한다. 예와 제도가 없으면 정치를 할 수가 없다. … 『노자』

                를 보면 넓은 가르침이 있다. 그런데 『노자』는 ‘무無에서 유有가 생
                긴다’고 말했다. 이는 아무 것도 없는 허무를 주主로 한 것으로, 한

                쪽의 말을 일방적으로 세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찌 그러한 연

                유가 있겠는가! … 대저 아무것도 없는 지극한 허무는 그 무엇도
                만들어 낼 수 없다[夫至無者, 無以能生(無=不能)]. 따라서 태어남의
                시작은 자생自生이다. 자생은 반드시 체體인 유有를 필요로 한다.

                유有를 버리면 생존마저 위태롭다. 이미 존재하는 사물이 유有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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