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1 - 고경 - 2018년 8월호 Vol.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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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하늘과 땅이 열리고 만물이 함께 생겨났다; 큰 것이 그 성품
을 안정시키고, 세밀함이 그 형체를 고요하게 만들었다; 음은 그
기氣를 감추었고, 양은 그 정精을 발양시켰다; 해롭게 함이 없었으
며, 이익을 다툼도 없었다; 놓아도 잃어버리지 않았고, 거두어도
가득차지 않았다; 없어져도 중간에 요절하지 않았고, 남아 있어도
장수하지 않았다; 복을 얻을 곳도 없었고, 화를 당할 잘못도 없었
다; 각자는 그 명命에 따라 법도를 서로 지켰다. 현명한 사람은 지
혜로 승리를 구하지 않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음 때문에 패
배하지 않았다; 약한 사람은 핍박받고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고,
강한 사람은 힘으로 모든 것을 다하지 않았다; 군주가 없어도 사
물들의 질서가 잡혔고, 신하가 없어도 모든 일들이 이치대로 이뤄
졌다; 몸을 보존하고 본성을 닦음에 그 기강에 어긋나지 않았다;
오직 이와 같을 뿐이었기에 능히 오래도록 유지되었다. (그런데) 지
금 너희들이 음音으로 성聲을 어지럽히고 색깔을 지어 형체를 속
이고 있다; 밖으로 그 용모를 바꾸고 안으로 그 감정을 숨기고 있
다; 욕심을 품어 많음을 구하고, 속임수로 이름을 추구하고 있다;
군주가 세워지자 학대가 많아지고, 신하의 서열이 정해지자 도적
이 생겨났다; 않아서 예법을 만들어 백성들을 속박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속이고 둔한 사람을 기만한다. … 너희들 군자의 예법은 실
로 천하를 비천하게 만들고 천하를 어지럽히고 천하를 망하게 하는
술책일 따름이구나!” (강조는 필자)
37)
37) [三國魏]阮籍著·陳伯君校注, 『阮籍集校注』, 北京:中華書局, 2015, pp.170~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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