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고경 - 2018년 9월호 Vol. 65
P. 30
과 정취情趣’를 제대로 번역문에 담아내기는 상당히 힘들다. 운문이 특히
그렇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시詩를 중국어로 옮기는 것을 구마라집은 마음
내켜 하지 않았다. 희대稀代의 번역가가 얼마나 싫었으면 “번역문은 (음식
먹는) 사람을 토하게 만든다”고 말했을까! 다행히 그 상황을 귀띔해주는 기
록이 『고승전·권2·구마라집전』에 남아 있다.
“사문 승예는 재주가 많고 식견이 뛰어났다. 항상 구마라집을
따라 다니며 전사傳寫(받아쓰는 것)를 맡았다. 구마라집은 매번 승
예에게 서방(서역과 인도)의 문체[辭體]를 이야기 하고, 그것과 중
국 문체의 같고 다름에 대해 설명했다. 구마라집이 말했다. ‘인
도 풍속은 문장의 체제를 대단히 중시한다. 문장의 음절과 운율
이 음악과 자연스레 어울리는 것을 최고로 친다. 대저 국왕을
만나면 반드시 그 덕을 찬양하고, 노래로 공덕을 찬탄하는 의
식儀式을 거행하며 붓다를 친견하는 것을 귀중하게 생각한다.
경전 속의 게송들은 모두 그런 양식들이다. 그런데 범어를 중국
어로 바꾸면 원문의 그런 아름다운 맛이 사라져 버린다. 문장의
뜻은 얻어도, 문체文體는 완전히 어긋나고 만다. 마치 밥을 씹어
남에게 주는 것처럼 맛도 없고, 먹는 사람을 토하게 만든다.’ 구
마라집은 예전에 사문 법화에게 게송을 지어준 적이 있었다.
‘밝은 덕德을 기른 마음 산의 그윽한 운치 사방 1만 리里에 가득
하고, 외로운 오동나무에 깃들어 사는 슬픈 난새[鸞鳥]의 청아한
울음소리 구천까지 울려 퍼진다!’ 게송 열 수를 지었는데 문체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