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6 - 고경 - 2019년 2월호 Vol.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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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에”라는 구절 이하는 수행이나 행동 역시 다름을 밝혔다. (이하는 ㉢부

           분) 세 번째인 “이로 인해 중간 근기의 사람들은”이라는 구절 아래로는 행
           하는 것을 밝혔는데, 즉 “중간 근기의 사람들은 동정불이動靜不二의 도리

           를 들어도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진리가 존재할까?’ 의심하고
           ‘진리가 없을까?’ 의심하는 것을 가리킨다. “근기가 낮은 사람들은 박수치

           고 돌아보지 않는다.”는 구절은, 자기의 견해와 다르고 일반적인 생각과
           어긋나는 진리를 말하면 마치 소귀에 북을 치고 피리를 부는 것처럼 근기

           가 낮은 사람들은 그것을 알 수가 없기에 크게 웃고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의 경계는 “거위와 나무 사이에 머물지

           만 세속의 번거로움을 면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장주莊周가 말한 것처럼
           결코 머무를 수가 없다. 지금 승조 스님 또한 이와 같다. 변화와 변화하지

           않음의 사이에 있으나 머무를 곳을 정하면 오히려 편향됨을 면하지 못한
           다. 그래서 결국 머무를 곳이 없다. 이것은 「물불천론」을 지은 의미를 설

           명한 것이다.



             [주석 3-2. 원강소] ① “然則動靜未始異, 而惑者不同”下, 第三、述異同也.
           動靜理雖不殊, 而迷惑之人謂異也. “緣使真言滯於競辨, 宗途屈於好異”者,

           真言謂佛教也; 競辨謂異說也; 宗途謂法理也; 好異謂異解也. “所以靜躁之
           極, 未易言也”者, 謂靜躁兩間難辨也. 又釋靜躁不二, 是靜躁之極, 欲說此

           理, 未易可論也.
             ① “그러한 즉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은 서로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데, 어리석은 사람은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이 완전히 별개라고 생
           각한다.”라는 구절 이하는 세 번째인 다름과 같음을 기술하는 것이다. 움

           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은 비록 다르지 않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다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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