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2 - 고경 - 2019년 2월호 Vol.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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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였다. 이 뿐만이 아니다. 혜가의 손자 제자인 법충法沖 마저 “의미라

           는 것은 진리다. 말로 한 것이 이미 진리에서 멀리 떨어진 것인데, 하물
           며 종이 위에 펼쳐 놓은 문자는 진리로부터 떨어진 것 중의 떨어진 것이
               7)
           다.” 라며 문자를 꺼려했다.
              문자를 멀리한 태도는 마조(709~788)를 거쳐 백장(749~814)에게까지 이

           어졌다. 백장은 “12베다를 다 외울지라도, 그것은 그저 증상만增上慢이라
           는 오만을 보태는 것일 뿐이다. (이것은) 불교를 비방하는 행위이지, 수행

           하는 것이 아니다. 경전을 읽고 교리를 연마하는 것은 세속인의 기준에서
           보면 좋은 일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이것(문자)은 다만 막히게

                     8)
           할 뿐이다.” 라고 말했다. 마조의 제자 대주혜해는 “경전은 문자와 종이
           와 먹이다. 본질상 공한 그것들이 무슨 영험이 있단 말인가? 영험이라는

           것은, 경전을 지니는 사람이 마음 씀씀이를 가지고 있기에 신통하게 감
           응하는 것이다. 시험 삼아 1권의 경전을 책상위에 놓아보아라. 그 경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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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지니지 않아도 경전 스스로 영험이 있는가 보라!” 라며, 사람의 마
           음에 따라 영험이 있고 없고가 결정되지, 문자로 기록된 경전 자체는 영

           험이 없다고 확실히 말했다.
             이런 전통에 획기적인 변곡점變曲點을 찍은 사람은 『금강경』 연구에 매

           진하다 선으로 전향한 덕산선감(782~865)이라 할 수 있다. “십이분교로 구







           7) “ 義者, 道理也. 言說已麤, 況舒在紙, 麤中之麤矣.”
               『續高僧傳』 卷第27 「唐兗州法集寺釋法沖傳39」. T50-p666b.
           8) “ 縱然誦得十二圍陀經, 只成憎上慢, 却是謗佛, 不是修行. 讀經看敎, 若准世間是好事; 若向理明人邊
             數, 此是壅塞人.” 孫昌武等点校, 『祖堂集』, 北京:中華書局, 2007, p.643.
           9) “ 經是文字紙墨, 性空何處有靈驗? 靈驗者, 在持經人用心, 所以神通感物. 試將一卷經安著案上, 無人受
             持, 自能有靈驗否!” 『景德傳燈錄』 卷第28 「越州大珠慧海和尙語」, T51-p44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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