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고경 - 2019년 2월호 Vol.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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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론』의 문장이 이에 이르지 못하고, 또한 끝까지 독파하지
못했으니, 누구와 더불어 이를 바르게 하랴. 이전의 학장께서
(저술 강론 같은) 문장을 그만두고 멀리 개탄하며 미륵에게 말씀
드리고자 생각하신 이유가 실로 여기에 있노라.” 5)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 당시의 불교계는 격의불교의 폐단이 극심
하여 구마라집이 중국에 와서 반야경을 새로 번역해 주기를 고대했지만,
도안은 그가 도착하기 전에 한탄하며 미륵보살을 생각하며 세상을 하직
하였다.
승예가 지은 『중론』의 서문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반영되어 있다. 곧
백 개의 대들보로 지은 저택에 비추어 보면 띠풀로 지붕을 엮은 집이 기
울어 비루한 것처럼, 『중론』이 널리 밝은 것을 보게 되면 (당시 불교계의) 편
6)
협한 깨침이 더욱 비루해진다 라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에 의거하면, 저
서와 서문 등을 지어 격의불교를 본격적으로 비판한 것은 바로 구마라집
문하의 삼론학자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동력원은 바로 구마라집
이 장안에 와서 역출한 신역新譯의 반야경전과 새로 선보인 삼론 사론이
었다. 여기에서 잘 번역된 불경佛經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위력을
실감할 것이며, 훌륭한 번역에 따른 구마라집의 공적이 또 얼마나 대단했
는지 평가해야 할 것이다.
5) 승우, 『출삼장기집』 제8권, 僧叡 「毘摩羅詰提經義疏序」 제14, T55-p59a. “自慧風東扇 法言流詠已來
雖曰講肆格義迂而乖本 六家偏而不卽性空之宗. 此土先出諸經 於識神性空明言處少 在神之文其處甚
多. 中百二論文未及此 又無通覽誰與正之. 先匠所以輟章遐慨 思決言於彌勒者 良在此也.”
6) 『증론』, 「승예서僧叡序」, T30-p1a. “夫百樑之搆興 則鄙茅茨之仄陋 覩斯論之宏曠 則知偏悟之鄙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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