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8 - 고경 - 2019년 4월호 Vol.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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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이며, 서로 다르다고 식별해도 이는 같은 속의 다름이다. 이것은 반야
와 진제가 단지 다름 속의 같음이며, 같음 속의 다름임을 말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③ 반야는 인식하는 능력을 갖고 있고, 대상 즉 만법은 본성
상 공하다는 본성[진제]을 지니고 있다. 모든 존재의 본성이 실재하나 반
야가 아니면 그것[만법의 본성]을 인식할 수 없다. 반야와 진제가 서로 도
움을 주기에[상응하기에] 인식하는 공능이 성취된다. 성인[붓다]이라도 같
게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반야와 진제의 작용이다. 반야가 비록 인식하는
공능을 가지고 있으나 미혹되게 집착하는 지혜는 없으며, 대상이 비록
실재하나 모습은 없고, 인식하는 반야와 인식되는 진제는 텅 빈 모습 그
대로이며, 반야와 진제의 체성體性은 공적한데, 성인이라도 다르게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반야와 진제의 공적한 본성이다. ④ 그래서 “모든 존재는
다르지 않다.”는 경전의 말씀이 뜻하는 것이 어찌 오리의 다리를 늘이고
학의 다리를 잘라 같게 만들고, 높은 산을 평평하게 하고 깊은 계곡을 메
워야만 다르지 않는 것이라는 그런 의미이겠는가? 이 때문에 “참으로 신
기합니다! 붓다시여! 다르지 않은 존재 가운데서 모든 존재의 다름을 말
씀하십니다[即同而異]!”거나 “반야와 모든 존재는 같은 것도 다른 것도 아
닌 모습입니다[即異而同].”라고 경전은 말씀하신다. 경전의 이런 말씀들은
진실로 그러하도다.
[26] [질문 9] ① 難曰: 論云“言用則異, 言寂則同.” 未詳般若之內, 則有
用寂之異乎?
[26] [질문 9] ① 질문 한다: 「반야무지론」의 본문은 “작용을 말하면 다
르고, 본성을 말하면 같다.”고 했다. 반야지혜 안에서도 작용과 본성의
차이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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